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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상황에서도 보편적인 도덕의 원칙은 존재할까?

· 약 17분
Minhyeok Kang
Front End Developer @ 타다

모든 상황에 일관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철학은 없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다보면, 매번 드는 생각이다. 나에게 철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원칙과 가치관을 견고히 만들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금껏 포스팅했던 공리주의나 자유지상주의 철학은 우리 사회의 모든 상황을 매끄럽게 설명할 수 없었다. 한편 공리주의의 창시자 벤담의 제자인 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다, 공리주의의 전제에서 벗어나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과연 모든 상황에 일관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철학은 과연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철학자들은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원칙을 찾는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그것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편 임마누엘 칸트는 이와 같은 철학의 세계에 다른 철학자들보다 더 엄격한 도덕을 내세우면서 등장한다. 그는 판단의 여지가 주어지는 경험적 철학이 아닌, 선험적 철학을 들고 세상에 나왔다. 칸트는 과연 모든 상황에 일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철학을 만들었을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칸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트가 생각하는 자유에 대한 기준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 칸트가 자유를 바라보는 철학으로부터, 앞으로 소개될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의 최고 가치를 설명하는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을지에 대한 작은 판단부터, 결혼이나 취업과 같이 인생을 바꿀 중요한 판단까지 매 순간 판단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판단에서 어떠한 제한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자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칸트는 자유의 개념을 더욱 깊숙히 파고 들어, 판단의 주체를 본질적으로 통찰한다. 그는 우리의 의식적 선택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라 말한다. 반면 욕구에 따라 결정된 판단은 오히려 복종의 상태로, 이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칸트의 관점에서 우리가 더운 여름에 탄산음료를 마시는 선택은 우리의 자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갈증이라는 욕구 등의 타성에 의한 판단인 것이다. 즉, 자신이 정한 원칙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욕구나 감정에 의해서 행해지는 모든 행위는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칸트는 자율과 타율이라는 대조되는 두 단어를 사용한다. 타율적인 행동이란 말 그대로 외부로부터 주어진 결정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행위를 지시 및 강요하는 일반적인 타성 외에도, 물리 법칙을 비롯한 자연 법칙이나 감정, 욕구에 의한 행위도 타율적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는 이 타율적인 행위들을 설명할 때, 그 행위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는 경우라고 말한다. 어떤 행위 자체가 수단이 되었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아쉬운 하루를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아서, 또는 습관적으로 밤 늦게 까지 휴대폰을 하다가 잠드는 것은 칸트의 입장에서 자유로운 행동이 아니다. 이 경우에는 휴대폰 동영상이나 게임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단지 습관을 지속하려는 무의식적 욕구나 잠들고 싶지 않은 목적의 수단으로서 행해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율적인 행동은 자신이 정한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행위들은 법칙에 의해서 판단되기 때문에,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누군가 책을 읽는 것이 돈 벌이를 위한 지식을 얻기 위함이거나 자신의 지식을 쌓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즐겁기 때문이라면 그 사람의 독서는 자유로운 행위인 것이다.

칸트는 그 자율적 판단이 인간과 사물의 차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이 부여한 법칙대로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특별한 존엄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행위의 동기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살인과 같은 중죄에 있어서도 동기를 살핀다. 우발적 범행인지, 계획적 범행인지가 중요한 논점이 된다. 가치판단에 있어서 행위의 의도는 도덕적 가치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칸트의 도덕 철학도 마찬가지다. 칸트는 어떤 행위의 도덕성을 판단할 때, 결과가 아닌 동기를 살핀다. 어떤 동기로 이루어진 행위인가가 가치 판단의 근거가 된다.

칸트는 동기의 유형을 의무 동기와 경향성 동기로 나누었다. 의무 동기는 옳은 이유로 옳은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하며,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인 경우를 말한다. 이에 반해 경향성 동기는 의무가 아닌 외적 동기로, 자신의 욕구나 그 외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평판과 지위를 유지하고 남들에게 자신의 선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이는 경향성 동기에 의한 행위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선한 행위라 할 수 없다. 나아가 봉사활동에서 물질적이나 사회적 대가를 받지 않더라도 아주 조금의 쾌락을 느끼는 것이 봉사의 이유라면, 그 또한 선한 행위라고는 할 수 없다. 반대로 봉사활동 그 자체가 자신이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천한다면, 이는 의무동기에 의한 행위로 선한 의도를 가진 선한 행위이다.

칸트의 철학에서 동기는 매우 중요하다. 경험주의적 방식을 통해 귀납적으로 판단하는 철학자들과는 다르게, 칸트는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동기는 행위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이다.

행위를 유발하는 자신만의 준칙은 무엇인가?

칸트의 철학에서는 인간의 이성이 가진 가치를 중시한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야말로 우리의 의지를 결정할 수 있고, 그 의지는 경향성에 지배받지 않는 독립적인 선택의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껏 이성이란 개념을 다룬 철학은 많았다. 하지만 칸트의 이성은 타 철학의 이성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공리주의를 예로 들면, 그들은 인간의 이성을 새로운 욕구를 찾는 수단으로 여긴다. 즉, 이성을 도구로서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칸트의 이성은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도덕적인 원칙을 세울 수 있는 근원이라 말한다.

칸트는 이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정언 명령과 가언 명령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가언 명령은 어떤 명령이 지시하는 행위가 다른 것의 수단인 경우를 말한다. 이와 반대로 정언 명령은 명령이 따르는 원칙과 형식에 관계되어, 어떠한 조건이나 예외없이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 칸트는 오직 정언 명령만이 도덕적인 명령의 자격을 갖춘다고 말한다. 정언 명령은 쉽게 말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는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 예시로, 칸트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인류 사회에 필요한 보편적 정언 명령으로 설정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은 그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 즉, 인간에 대한 존중을 그 자체로 행해야하며, 결코 사회 발전의 수단으로서 여겨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칸트에게는 자살이나 자신의 신체 일부를 포기하는 행위도 비도덕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인간이며, 자신을 생명체로 존중하지 않는 것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시로 선의의 거짓말도 그에게는 비도덕적인 행위이다. 모든 인간은 알 권리가 있는데, 거짓말로 상대를 속이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칸트의 정언 명령 개념은 위에서 말했던 자율과 의무동기에 기반하여 설명된다. 진정으로 자유롭게, 마땅히 해야할 일을, 자신만의 원칙으로 설정하여 따르는 것이 정언 명령이다. 그리고 그것이 칸트가 도덕적 가치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우리는 칸트가 말하는 가치판단의 근거 3가지를 살펴보았다. 칸트의 시도는 매우 영향력있고, 본질적인 가치를 논한다는 점에서 꽤나 일관성을 가진다. 그의 철학을 보편적 도덕의 원칙으로 삼아도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봉사활동에서 아주 작은 쾌락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행위의 도덕성이 인정되지 않는 철학,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행위가 비윤리적인 철학, 외부의 영향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인정받을 수 없는 우리의 자유, 과연 실현 가능한 철학일까?

그의 철학이 인간의 이상적 '선'을 그린 것이라면, 그것은 말그대로 이상이 아닐까? 우리가 이 철학을 사회의 도덕적 발전에 적용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로 사용할 수 있을까? 칸트의 철학에서는 인간의 존엄성 원칙에 의해서, 합의된 성인간의 성관계는 오직 부부여야만 가능하다는 엄격한 자유를 말한다. 과연 그 엄격한 원칙이 모두에게 실현가능할까? 또 그는 우리의 판단의 원칙이 자율적이고 정언 명령에 따라야한다고 말하지만, 정언 명령은 모두가 같을 수 없고, 따라서 각자 다른 도덕의 원칙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그의 이론이 과연 보편적인 철학이 될 수 있는 것이 맞을까?

많은 의문이 들지만, 칸트의 철학은 한편으로는 매우 일관성 있고, 보편적 도덕법의 근간이 될 가능성을 가졌다. 선험적 통찰을 통해 본질을 논하는 가치 판단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점에 큰 의의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위처럼 많은 의문점을 만들고, 실질적인 정치나 법안 등에 적용하기에는 너무나 엄격한 것이 문제이다. 적용할 수 없다면, 말 그대로 단지 철학일 뿐이다.

과연 모든 상황의 도덕적 가치를 판단할 보편적 철학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