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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마무리하며

· 약 14분
Minhyeok Kang
Product Engineer @ flex

가끔 나는 비정기적으로 회고를 작성하곤 했는데 대부분 특정 사건이나 일련의 경험이 방점을 찍을 때, 그때의 감정과 교훈을 기억하기 위해서 작성해왔다. 이번에는 특별히 한해를 돌아보는 방식의 회고를 작성해보려고 한다. 내 회고에는 특별히 형식은 없고, 이번년도에 내가 '무엇을 고민했는가'에 대한 스냅샷을 남겨놓는 것이 목적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

올해는 큰 이벤트 중 하나로 이직이 있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무엇을 할 것인가?'의 연장선에 있었는데,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이직을 고민할 당시에, 1) 더 비즈니스와 제품 모두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포지션 2) 높은 수준의 엔지니어링 역량 자체를 요구하는 포지션 3) 규모가 큰 조직에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포지션 중에서 고민했다. 포지션만 놓고보면,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였다.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는 나의 솔직한 니즈를 파악해내는 것에 예전보다 능숙해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래서 위 선택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개발자로서의 능력치 자체를 크게 끌어올리고 싶었다. 개발이 재밌기 때문에, 특히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은 가끔 너무나도 뭣같지만 참으로 즐거운 일이기 때문에,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좀 더 나에게 도전의식을 끌어올리는 과업을 줄 수 있는 포지션이 필요했다. 좋은 기회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잡았다. 그 선택을 하고 만으로 9개월이 지난 지금,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대 이상이었다. 얻고자 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생각해보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늘 큰 고민은 없었다.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내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것과의 교집합을 그려보면 답이 어렵지 않게 떨어졌으니까. 오히려 이번년도에 가장 의미있는 고민을 많이 하게 만든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질문인데, 새로운 포지션에서 일하면서 이 고민을 정말 깊숙하게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일 할 것인가?'

이 고민을 질리도록 했다. 마이크로하게는 어떤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부터, 조금 더 나아가서는 어떤 일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더 거시적으로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을 대할 것인가? 까지 이어지는 고민을 계속 반복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포지션으로 일하기 전까지는, 보통 이것을 깊게 고민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대로, 생각나는대로 일했다. 그렇게 해도 성과가 나는 경우도 있고, 성과가 나지 않았더라도 어떻게 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할 생각을 못해봤다. 그냥 좀... 생각대로 안된 일 정도로 두고 끝났을 것이다. '열심히는 했는데 왜 잘 안됐지?' 하며 표면적인 이유 몇개를 적어놓고서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이정도면 잘했지'하고 넘기며, 또 그렇게 다른 일을 했었던 것 같다. 그저 그정도 수준으로 일을 마치는 것이 내가 속한 조직이나 팀의 스탠다드였을 수도 있겠다.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회사에서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추구하는 일의 수준이다. 모두가 높은 수준으로 이것을 달성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정말 뛰어난 동료들은, 존경심이 들 정도로 어떻게 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처음에는 정말 보법이 다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그들처럼 사고하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 성공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 그 전에 이 일은 왜 해야하는가?
  •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동료들에게 설득할 것인가?
  • 정말 이 일이 잘되게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가?
  • 이 일을 '잘'해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즉, 성공 지표에 대한 최소 기대 수준과 최대 기대 수준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 여러 문제를 동시에 풀어내는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를 고민했다. 이 고민들은 내가 일을 날카롭게 만들고 행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어떤 주관이나 철학없이 행하던 행위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서 여과되고 정렬된다.

이것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자본 요소

늘 하는 고민이지만, 이번년도에는 좀 더 구체화시킨 나만의 이론으로 만들고 싶었던 주제가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연히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자본 이론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영감을 받아서 조금 변형한 방식으로 나만의 이론을 만들어보았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자본의 종류에는 경제 자본, 문화자본, 사회관계 자본, 그리고 상징자본이 있다.

  • 경제자본은 말 그대로 경제적 능력을 의미한다.
  • 문화자본은 앞의 예에서 본 것처럼 사회화 과정에서 얻은 문화에 대한 특정한 감각과 능력을 말한다.
  • 사회관계 자본은 집단과 사회 연결망 내에서의 위치와 관계이다.
  • 상징자본은 다른 세 가지 유형의 자본들이 정통적으로 승인된 형식,즉 위신 존망 명예 명성 등을 의미한다.

나는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자본의 개념을 제거하고, 건강 자본을 특수한 관계로 추가했다. 상징자본이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관계 자본에 의해서 달성되는 무엇이라고 한다면, 건강 자본은 반대로 위 3가지 자본을 쌓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본이다. 그리고 정식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 모두가 건강 자본에 포함된다.

그래서 나는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관계자본, 그리고 건강자본 이렇게 4가지를 내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생각했고, 이것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올 한해 부단히 노력했다. 내 이론에서는 이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균형이 무너지면 충분히 행복한 상태가 될 수 없다.

이 이론은 아직 좀 더 구체화가 필요한데, 좀 더 정리가 되면 이 생각의 스냅샷을 남겨두기 위해서 글로 풀어내볼 생각이 있다.

어쨌든 나는 위 이론을 세우고서, 올해 부족하다고 느꼈던 문화자본과 건강자본의 향상에 초점을 두고 몇가지 의사결정을 했다.

문화자본의 향상을 위해서 올해 노력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 드립 커피
  • 위스키
  • 주짓수
  • 풋살

나는 올해 위 4개를 새로운 문화자본으로서 내 삶에 들여왔다. 내 삶에 좀 더 재미와 취향을 들여놓기 위해서 결정했던 것이고, 몇몇에 대해서는 시작은 우연일지라도 의도적으로 위 4개의 취미를 내가 소유한 문화자본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건강자본에 대해서는

  • 주기적인 헬스(유산소 중심)
  • 직장과 근접한 곳에 자취

를 선택했다.

얼핏보면 '직장과 근접한 곳에 자취'에 대해서는 건강자본과 연관성이 없어보일 수 있는데, 나는 이 선택이 올해 내 삶이 행복하고 건강해지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이라 본다. 비싼 월세를 감당해야 했지만(경제자본의 희생), 덕분에 많은 시간을 확보하고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아쉬웠던 것들

책을 많이 읽지 않은 것이 아쉽다. 좋은 책을 몇 권 추천 받았음에도 읽지 않은게 후회된다. 책을 적어도 한달에 한권은 읽을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운동으로부터 성과를 만들지 못한게 아쉽다. 헬스, 주짓수 두 가지를 했는데 둘 다 단지 '수행'만 하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가령 헬스로 체중 감량 Nkg을 했다거나 주짓수 1그랄 승급을 했다거나 하는 이벤트가 없었다. 내년에는 꼭 성과로서 만들고 싶다. 그래야 지속할 수 있다.

총평

총평으로는, 개인적인 감상에 비춰보면 이번년도에 특히 인격적으로 한 계단 올라선 감이 있다. 속된 말로, 뭔가 폼이 올라왔다. 사고하는 방식, 감정을 다스리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내 의견을 다루는 방식 전체가 어딘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한동안 쌓아왔던 경험과 생각들이 한번 응축 과정을 거치면서 발생한 현상이라 본다. 약간은 시니컬해진 감이 있지만 여전히 그 열정이 식지 않은 내면의 자아가 좀 더 성숙해진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이 좋다. 이런 감각을 느끼면서 살아가는게 참 좋다.